1616년(광해군8)~1684년(숙종10). 조선 후기의 승려. 본성은 윤씨(尹氏), 자는 이눌(而訥), 호는 침굉(枕肱). 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천봉산 처우화상(處愚和尙)에게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3세 때 지리산으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수제자인 태능(太能)을 찾아가 그의 법을 계승하고 오도(悟道)의 선승(禪僧)이라는 말을 들었다. 19세에 윤선도(尹善道)가 양자로 삼아 환속시키려 하였으나 울면서 끝까지 응하지 않았다. 그 뒤 윤선도가 을사사화로 광양에 유배되었을 때 그를 찾아가 <창랑가(滄浪歌)>를 불러 위로하였다고 한다. 특히 윤선도의 영향을 받아 국문가사를 남기고 있다. 선교(禪敎)에 밝았을 뿐 아니라 유교와 도교에도 조예가 깊었고 서예와 문학에도 능통하였다. 선암사(仙巖寺) 주지를 비롯하여 송광사(松廣寺)․연곡사(燕谷寺) 등 호남지방의 대찰에 머물렀으며, 전라남도 금화사(金華寺)에서 입적하였다. 저서로 ≪침굉집(枕肱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