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중종14)~1581년(선조1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공섭(公燮), 호는 송천(松川). 1552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공조좌랑이 되었다. 공조좌랑으로 있을 때 당시 권신이었던 윤원형(尹元衡)에 의하여 김홍도(金弘度)와 함께 탄핵을 받고 파직을 당하였다가 다시 복직되어 진주목사․경주부윤를 지냈다. 진주목사로 있을 당시 청렴하지 못하였다는 대간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1578년에 성절사로 명나라에 갔으나 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다시 파직되었다가 대사성에 복직되었다. 시문에 능하여 선조 때 8문장의 한 사람으로 뽑혔으며 효행으로 정문이 세워졌다. 저서로 ≪송천집(松川集)≫․≪용성창수록(龍城唱酬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