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고종4)~1937. 조선 말기 가곡의 거장.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성소(聖韶), 호는 금하(琴下). 서울 출신으로 가곡의 명창 하순일(河順一)과 사촌간이다. 최수보(崔守甫)․박효관(朴孝寬)에게 가곡을 사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중년 이후 출사하여 한성부소윤(漢城府少尹) 겸 한성재판소 판사를 거쳐, 내장원(內藏院) 문교정리위원(文敎整理委員)․전남독쇄관(全南督刷官)․진안군수 등을 지냈다. 국권피탈 후 관직을 떠나 음악에만 전념하여 정악전습소(正樂傳習所) 학감, 여악분교실장(女樂分敎室長)을 겸하였으며, 이것을 계기로 대정권번(大正券番)․조선권번(朝鮮券番)을 창립하였다. 1926년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촉탁으로 취임, 가곡․가사․시조를 전수하였고, 1931년 가곡집 ≪가인필휴(歌人必携)≫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