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4년(연산군10)~1585년(선조1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퇴지(退之), 호는 인재(忍齋).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이다. 1531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을 지냈다. 1535년 김안로(金安老)의 전횡을 탄핵하다가 흥양(興陽)으로 유배 갔으며, 1537년 김안로가 사사된 뒤 풀려났다. 그 후 수찬․경기도관찰사를 거쳐 이조판서․좌찬성․대제학을 역임하였다. 선조가 즉위하자 원상(院相)으로 정무를 처결하고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저서로 ≪인재집≫․≪인재잡록≫이 있으며, 흥양으로 유배 갔을 때 자신의 심경을 노래한 가사 <원분가(寃憤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