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3년(숙종39)~1778년(정조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익여(翼汝), 호는 익익재(翼翼齋).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장인이다. 1743년 딸이 세자빈(惠慶宮洪氏)으로 간택된 뒤 이듬해 문과에 급제, 사관이 되었다. 이후에 예조참판․경연동지사(經筵同知事)․비변사(備邊司) 당상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왕실의 외척으로, 당시 영조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집안의 김귀주(金龜柱)와 세력다툼을 벌이며 대립하였다. 1762년 세자가 폐서인(廢庶人)이 되고 죽음을 당할 때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영조가 세자에게 사도라는 시호를 내리자 태도를 바꾸었다.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기록한 ≪수의편(垂義篇)≫을 지어 김귀주 일당을 탄핵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저서로 ≪정사휘감(正史彙鑑)≫․≪익익재만록(翼翼齋漫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