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1년(성종22)~1554년(명종9). 조선 전기의 화가.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원량(元亮), 호는 영천자(靈川子)․아차산인(峨嵯山人). 신숙주(申叔舟)의 증손자이다. 1519년 현량과에 급제하였으나, 같은 해에 기묘사화로 인하여 파방되었다. 1521년 신사무옥 때 안처겸(安處謙) 사건에 연루되어 장흥(長興)으로 귀양 갔다가 양주(楊州)로 이배되었으며, 뒤에 풀려났다. 그 뒤 20여 년간 아차산 아래에 은거하며 서화에만 몰두하였다. 인종 때에 다시 복직되어 태인과 간성의 목사를 역임하고 상주목사로 재임 중 죽었다. 문장에 능하고 서화를 잘하여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