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4년(선조7)~1642년(인조2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산(梁山), 자는 여빈(汝彬), 호는 송담(松潭).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에게 붙잡혀 일본에서 9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였다. 석방 뒤 환국하여 외부와 단절하고 지냈으나, 40세 때 조정에서 광해군의 폐모사건으로 의론이 분분하자 광해군의 난정을 여러 번 상소하였고 명사들과 교유하여 벼슬에 나아갔다. 인조반정 뒤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자여도찰방(自如道察訪) 등을 지냈다. 이후 벼슬을 버리고 귀향, 후학의 교육에 힘쓰며 둔세절교(遁世絶交)하고 여생을 보냈다. 저서로 ≪송담유사(松潭遺事)≫가 있으며, 여기에 <도대마도가(到對馬島歌)>, <재일본장가(在日本長歌)> 등 가사 4수가 실려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