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5년(중종10)~1590년(선조23).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이재(伊齋)․암실(暗室)․여봉노인(茹峰老人). 1543년 문과에 장원한 뒤로 정언이 되어 대윤(大尹)의 편에 서서 이기(李芑)를 탄핵해 파직시켰으나, 1545년 명종이 즉위하고 소윤(小尹) 윤원형(尹元衡)이 을사사화를 일으키자 순천으로 유배되었다. 이어 양재역(良才驛) 벽서사건으로 죄가 더해져 진도(珍島)로 이배되어 19년간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 동안 이황․김인후 등과 서신으로 학문을 토론하였고,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대학장구(大學章句)≫․≪동몽수지(童蒙須知)≫ 등을 주석하는 등 학문에 정진하였다. 시․문․서예에 능하였으며 양명학(陽明學)도 깊이 연구하였다. 저서로 ≪소재집(蘇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