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8년(중종13)~1578년(선조1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자응(子膺), 호는 옥계(玉溪)․칙암(則庵). 정희보(鄭希輔)의 문인이다. 1546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의 천거로 박사가 되었다. 지례현감(知禮縣監)으로 나가서 선정을 베풀어 높은 치성(治聲)을 들었으며 청백리로 뽑혔다. 이후에 충청도관찰사, 전주부윤(全州府尹)을 거쳐 부제학이 되었는데 홀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모두 사퇴하고 곤양군수로 나갔다. 평소 기대승(奇大升)․노수신(盧守愼)․김인후(金麟厚) 등의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도로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저서로는 ≪옥계집(玉溪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