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3년(원종4)~1342년(충혜왕복위3). 고려 말 정주학 수용 초기의 유학자.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천장(天章)․탁보(卓甫), 호는 백운(白雲)․단암(丹巖). 세상에서 ‘역동선생(易東先生)’이라 일컬어졌다. 문과에 급제하고 영해사록(寧海司錄)이 되어 민심을 현혹한 요신(妖神)의 사당을 철폐하였다. 1308년 감찰규정(監察糾正) 때 충선왕이 숙창원비(淑昌院妃)와 밀통한 것을 알고 이를 극간한 뒤 벼슬을 내놓았다. 충숙왕이 그 충의를 가상히 여기고 누차 불렀으나, 사퇴하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뒤에 성균좨주(成均祭酒)를 지내다가 치사하였다. 당시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정주학(程朱學) 서적을 처음으로 해득, 이를 후진에게 가르쳤다. 경사(經史)와 역학에 통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