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2년(선조15)~1667년(현종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계빈(季彬). 1623년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좌랑 등을 지내고, 옥과현감(玉果縣監)으로 재직 중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을 도와서 무기와 군량의 조달에 힘썼다. 뒤에 풍기군수․원주목사 등을 거쳐 경주부윤에 이르러 고향으로 내려갔다. 만년에는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저서로 ≪송암유고(松巖遺稿)≫, ≪나씨가범(羅氏家範)≫이 있으며, 여기에 <강호구가(江湖九歌)> 9수가 실려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