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5년(태종무열왕 2)~?. 신라 중대의 대학자. 경주설씨(慶州薛氏)의 시조. 자는 총지(聰智). 아버지는 원효(元曉), 어머니는 요석공주(瑤石公主)이다. 신라 십현(十賢)의 한 사람으로 한림을 지내며 주로 왕의 자문 역할을 했다. 신라에 한문이 처음 들어왔을 때 구경(九經)을 우리글로 해석했으며, 한자와 음과 훈을 빌려 이두(吏讀)를 창제했다고 한다. <화왕계(花王戒)>를 지어 신문왕을 충고했다는 일화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