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4년(중종39)~1592년(선조2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도원(陶原)․후율(後栗). 이이(李珥)의 문인이다. 1567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주목․파주목․홍주목의 교수를 역임하면서 사풍(士風)을 바로잡았으며, 종묘서영(宗廟署令)을 역임하였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옥천(沃川)으로 내려가 학문과 후진양성에 힘썼다. 이이의 문인 중 가장 뛰어난 학자로,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지지하여 이이의 학문을 계승․발전시켰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영규(靈圭) 등 승병과 합세하여 청주를 탈환하였다. 저서로 ≪중봉집(重峯集)≫․≪동환봉사(東還封事)≫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