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년(숙종23)~1756년(영조3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중례(仲禮)․원례(元禮), 호는 노강(蘆江)․도천(道川). 1731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을 거쳐 지평(持平)이 되었다. 1735년 이태중(李台重)을 예문관에 추천한 것이 말썽이 되어 삭직(削職), 다시 교리(校理)가 되었으나 소론 이광좌(李光佐)의 일당이라 하여 파면당하고 해도(海島)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석방되어 동부승지․부제학에 올랐다. 이때 ≪광묘어제훈사(光廟御製訓辭)≫를 찬집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었고, 1750년 도승지로서 영흥흑석리(永興黑石里) 비각을 서사(書寫), 그 공으로 가자(加資)를 받았다. 1755년 찬집당상(纂輯堂上)으로 ≪천의소감(闡義昭鑑)≫을 찬수하였다. 저서로 ≪도천집(道川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