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6년(충목왕2)~1405년(태종5).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명중(明仲), 호는 우재(吁齋)․송당(松堂). 1374년 문과에 급제하여 통례문부사(通禮門副使)․전법판서(典法判書)․도검찰사(都檢察使)를 지내며 왜구 토벌 등에 공을 세웠다. 1388년 위화도회군 이후 이성계로부터 신임을 얻어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겸 대사헌․평리(評理) 겸 판상서사사(判尙瑞司事)를 지냈으며, 정도전(鄭道傳)과 함께 전제(田制) 개혁에 앞장섰다. 1392년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으로 평양백(平壤伯)에 봉해졌고 문하좌시중과 5도 도통사를 겸직하여 병권을 장악하였다. 1․2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李芳遠)의 책봉을 주장했으며,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에 책록되었으며, 태종을 옹립하여 영의정부사에 오르고 부원군(府院君)으로 책봉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토지제도에 조예가 깊어 하륜(河崙) 등과 함께 ≪경제육전(經濟六典)≫을 편찬하기도 하였으며, 저서로 ≪송당집(松堂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