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1년(숙종17)~1757년(영조3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국보(國甫), 호는 회헌(晦軒). 노론 4대신 중의 한 사람인 조태채(趙泰采)의 아들이다. 171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승지․이조참의 등을 지냈다. 1723년 신임사화로 화를 당한 아버지에 연좌되어 흥양현(興陽縣)에 유배되었다가, 영조 즉위 후 노론이 집권하자 풀려나왔다. 이후 강화유수․대사성․홍문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대사헌으로 신임사화를 논핵하고 소론의 영수 이광좌(李光佐)를 탄핵하다가 대정현(大靜縣)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온 뒤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호조판서에 임명, 대제학에 이르렀으나 왕의 뜻에 거슬려 유배되었다가 지중추부사에 등용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저서로 ≪회헌집(晦軒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