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7년(선조10)~1669년(현종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영길(英吉), 호는 선석(仙石). 1601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예산으로 낙향하였다. 광해군의 난정에 혐오를 느껴 과거를 보지 않다가 1619년 문과에 급제하여 1624년 통신사 정입(鄭笠)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건너가 장군 도쿠가와(德川家康)의 사립(嗣立)을 축하했고, 이듬해 귀국할 때 포로로 잡혀갔던 146명의 조선인을 데리고 왔다. 또 병자호란 때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귀환시키는 속환사(贖還使)가 되기도 하였다. 저서로 ≪선석유고(仙石遺稿)≫가 있으며, 여기에 <연군가(戀君歌)>․<전원사시가(田園四時歌)> 등이 실려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