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3년(명종8)~1594년(선조27).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회(子晦), 호는 낙애(洛涯)․송파(松坡). 아버지는 정사철(鄭師哲)이다.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배웠고, ≪소학≫을 자신을 다스리는 요체로 삼았다. 지극한 효성으로 양친을 봉양하고 상을 당했을 때는 여막에서 삼년상을 치렀다. 1764년 창건된 대구 금암서원(琴巖書院)에 아버지와 함께 제향되었다. 저서로 ≪낙애집(洛涯集)≫․≪낙애일기(洛涯日記)≫가 있으며, <술회가(述懷歌)> 6수와 <병중술회가(病中述懷歌)> 3수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