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7년(충숙왕복위6)~1392년(공양왕4). 고려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1360년 문과에 장원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무문관대제학을 역임하였고, 명나라와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외교적 수완으로 왜구와 여진족 토벌 등에 공로가 컸다. 내적으로는 의창(義倉)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하였으며 성리학에도 뛰어났다. 사회윤리와 도덕의 합리화를 기하며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국운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이성계의 신흥세력에게 희생되고 말았다. 시문(詩文)에 능하여 시조 <단심가(丹心歌)> 외에도 많은 한시가 전하며, 서화에도 뛰어났다. 고려삼은(高麗三隱)의 한 사람으로 꼽히며 저서로는 ≪포은집(圃隱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