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2년(선조35)~1673년(현종1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유춘(囿春), 호는 양파(陽坡). 1628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로 벼슬살이를 시작하여, 1637년 세자시강원의 보덕으로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따라 심양(瀋陽)에 가기까지, 당하관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때는 황해도 여러 산성에서 패잔병을 모아 항전하기도 하였다. 1637년 말에 심양으로부터 귀국하자 그 이듬해 충청도관찰사로 발탁되어 내외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육조의 판서와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673년 사직이 허락되기까지 20여 년 동안 5차례나 영의정을 지내면서 효종과 현종을 보필하였다. 저서로 시․문을 모아 엮은 ≪양파유고(陽坡遺稿)≫와 1656년까지의 일기인 ≪양파연기(陽坡年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