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6년(중종31)~1593년(선조26). 조선 중기의 문신․정치가.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임억령(林億齡)에게 시를 배우고 양응정(梁應鼎)․김인후(金麟厚)․송순(宋純)․기대승(奇大升)에게 수학하였으며, 이이․성혼과도 사귀었다. 1562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헌납 등을 거쳐 함경도와 강원도 암행어사를 지냈다. 1580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이때 <관동별곡>과 <훈민가(訓民歌)> 등을 지었다. 그 뒤 전라도관찰사․도승지․예조판서로 승진하고 대사헌이 되었으나 동인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고, 고향인 창평으로 돌아가 4년간 은거생활을 하면서 <사미인곡>․<속미인곡>․<성산별곡> 등의 가사와 시조․한시 등 많은 작품을 지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서인의 영수로서 철저히 동인들을 추방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귀양에서 풀려나 평양에서 왕을 맞이하고 의주까지 호종, 경기도․충청도․전라도의 체찰사(體察使)를 지냈다. 그러나 동인의 모함으로 사직하고 강화의 송정촌(松亭村)에 우거하였다. 시문집인 ≪송강집(松江集)≫, 시가작품집인 ≪송강가사(松江歌辭)≫, 또 필사본 ≪송강별집추록유사≫와 ≪문청공유사(文清公遺詞)≫ 등이 있으며, 여기에 그가 지은 가사와 시조가 실려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