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9년(선조2)~1641년(인조1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고고자(鼓鼓子). 정인홍(鄭仁弘)의 문인으로 허목(許穆)․조경(趙絅) 등 기호남인(畿湖南人)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1610년 문과에 급제하여 시강원겸설서․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다. 임해군 옥사에 대해 전은설(全恩說)을 주장하고, 영창대군이 피살되자 격렬한 상소를 올려 당시 일어나고 있던 폐모론의 부당함을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 인조반정 때까지 10년 동안 제주도에 위리안치 되었다. 인조반정 후 사간․이조참의․대사간․대제학․이조참판 등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였고, 특히 언관에 있으면서 반정공신들의 비리와 병권장악을 공격하였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행재소(行在所)로 왕을 호종하였고, 병자호란 때에는 화의주장을 적극 반대하였다. 항복이 결정되자 자결을 기도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자, 관직을 단념하고 은거하였다. 저서로 ≪동계집(桐溪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