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3년(중종38)~1620년(광해군12).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 김굉필(金宏弼)의 외현손이다. 이황(李滉)․조식(曺植)에게서 성리학을 배웠다. 일찍부터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1573년 김우옹(金宇顒)의 추천으로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뒤에도 계속하여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585년 교정청의 교정랑이 되어 ≪경서훈해(經書訓解)≫를 교정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각군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도록 선도하였다. 1594년 우승지․강원도관찰사․공조참판 등을 지냈고 1608년 임해군(臨海君)의 옥사가 일어나자 관련된 사람들을 석방하라는 상소를 올리고 귀향하였으며, 계축옥사(癸丑獄事) 때 상소하여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구하려하였다. 경서․병학․의학․역사․천문․풍수지리 등 모든 분야에 통달하였고 특히 예학(禮學)에 뛰어났다. 인조반정 이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저서로 ≪오선생예설분류(五先生禮說分類)≫․≪심경발휘(心經發揮)≫․≪의안집방(醫眼集方)≫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