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2년(충혜왕복위3)~1398년(태조7).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학자.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이존오(李存吾)․김구용(金九容) 등과 교유하였다. 1362년 과거에 합격해 태상박사(太常博士)를 역임하다가, 친원배명정책에 반대해 권신 세력과 맞서 나주에 유배되었다. 유배 후에 이성계(李成桂)와 함께 1390년 전제개혁을 단행하여 조선 개국의 정치․경제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1392년 조준․남은 등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 건국의 주역이 되었다. 이후에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고려사(高麗史)≫를 편찬하였다. 제l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에게 참수되었다. 유학의 대가로 개국 후 군사․외교․행정․역사․성리학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였고, 척불숭유(斥佛崇儒)를 국시로 삼게 하여 유학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저서로 ≪삼봉집(三峰集)≫․≪경제육전(經濟六典)≫․≪경제문감(經濟文鑑)≫․≪불씨잡변(佛氏雜辨)≫ 등이 있고, 악장 작품에 <납씨가(納氏歌)>, <정동방곡(靖東方曲)>, <신도가(新都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