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4년(중종29)~1602년(선조3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응순(應順), 호는 주은(酒隱).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1년 문과에 급제, 종성부사(鐘城府使)를 지내고 좌참찬(左參贊)에 이르렀을 때 정여립(鄭汝立)을 탄핵하여, 그 공으로 경림군(慶林君)에 봉해졌다. 임진왜란 때 팔도도원수(八道都元帥)로서 서울과 임진강을 지키다 실패했으나, 평양이 적에게 함락되자 순안(順安)에 주둔하면서 왕의 행궁을 잘 지켰다. 호(戶)․예(禮)․형(刑)․공(工) 4조의 판서를 역임한 뒤, 좌의정에 올랐다. 유학에 조예가 깊었고 병서와 궁마에도 능했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