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3년(우왕9)~1453년(단종1).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재(節齋). 1405년 문과에 급제하여 세종 때 지평․집의․우부대언을 지냈다. 1433년 함길도도관찰사(咸吉道都觀察使)가 되어 야인(野人)들의 침입을 격퇴하고 6진을 설치하여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이후 형조판서로 승진하고, 예조판서․우참찬을 역임하다가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세종실록≫의 편찬을 감수하여 간행하였다. 문종 사후에 단종을 보필하였으나 수양대군에 의하여 두 아들과 함께 집에서 격살되고 대역모반죄(大逆謀叛罪)라는 누명까지 쓰고 효시(梟示)됨으로써 계유정난(癸酉靖難)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1746년 복관(復官)되었으며, 시조 2수가 전해지고 있다. 저서로 ≪제승방략(制勝方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