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7년(중종22)~1620년(광해군12). 조선 중기의 문인. 본관은 도강(道康), 자는 사화(士和), 호는 해암(懈菴). 관직은 없었으며 효렴으로 명성이 자자하여 당시 전라감사 정철(鄭澈)이 조정에 계문(啓聞)하여 경릉참봉(敬陵參奉)과 사헌부지평을 제수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정유왜란 때에는 의병을 모집하고 토지와 노비를 모두 팔아 의병장 고경명(高敬命)과 조헌(趙憲)을 도와주었다. 저서로 문집 ≪해암집(懈菴集)≫이 있으며, 여기에 시조 8수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