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3년(효종4)~1722년(경종2).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 김상헌(金尙憲)의 증손,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다. 이단상(李端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73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백악산(白岳山) 기슭에 낙송루(洛誦樓)를 짓고 동지들과 글을 읽으며 산수를 즐겼다. 기사환국 때 아버지가 사사되자 영평(永平)에 은거하였다. 성리학에 뛰어나 김창협과 함께 형제가 이이(李珥) 이후의 대학자로 명성이 높았다.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유배된 형 창집의 일로 지병이 도져 이듬해 석교(石郊) 촌사(村舍)에서 죽었다. 영조 즉위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 ≪삼연집(三淵集)≫․≪심양일기(瀋陽日記)≫․≪문취(文趣)≫ 등이 있다.